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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

 

성남, 20130920

 

추석 때 고등학교 친구 Y의 집에 갔었다.
광교에서 탔던 M1402 버스가 40분 후 분당 미금역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아직 Y는 거기 없었다.

뭐라도 사갈까 하고 작은 동네빵집에 들어갔고 갑자기 하루 지난 친구 생일이 생각났다. 생일초를 꽂을 수 있는 사천원 짜리 은박지 케이크. 같이 신나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고 촛불을 끄기 전 친구는 소원을 빌었다. "와, 재미있다!" 사천원 짜리 빵 케이크 사며 부탁해 받은 얇은 싸구려 생일초 몇 개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걸 알게 된 게 또 재미있었다.

친구집에 다녀와서 더 '행복'과 '불행'이란 단어에 집중하게 됐다. 올해 초 결국 남편과 이혼수속을 마쳤던 친구의 소식, 며칠 전 1년만의 통화 때 처음 건네들었고 "놀러와"라는 Y의 말에 추석연휴 하루는 꼭 그애 집에서 묵어야겠구나 생각했었다. 친구가 몇 년 전 열었던 작은 인터넷 쇼핑몰이 자리잡아 나와는 달리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걸 알고있었다. 그런데 집안에 발을 들이자 그게 더 실감이 났다. 혼자 살기에 많이 넓은 평수, 옷방이 따로 있고 남는 방도 있는 아파트. 하지만 휑하지 않고 곳곳에 예쁜 인형과 분위기 있는 조명, 그림들이 장식돼 아늑한 느낌의 그 집. 알고보면 쇼핑몰 상품 중 머리가 터지고 옆구리에 솜이 삐져나온 하자 있는 인형들이라지만, '이런 집에 살면 좀더 평화롭고 삶이 아늑할까?' 싶은 마음, 부러움이 잠깐 일었다.

친구의 마음상태가 걱정되고, 조금 불행할 것이라 짐작했던 내 기대와 달리 친구는 '행복'쪽에 가까워 보였다. "너 마지막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보여." 그때 2년 전일까, 결혼한 지 오래지 않았던 어느날. "응, 나 미용실에서도 그런 말 들었어. 이혼하고 얼굴이 활짝 피었다고" 빨간 머리염색, 여전히 도도한 콧날. 서른 셋 나이에 스무 살 때처럼 화려한 염색을 하면 안 어울릴 법도 한데 흰 드레스같은 원피스를 차려입은 친구의 아담한 어깨 위 빨간 단발머리는 썩 괜찮았다.

행복의 비결은 남자친구였을까? 집안에 들어섰을 때 기타가 세 개나 보였다. 음악가의 집같은 그 느낌에 깜짝 놀라 물음, "너 기타 쳐?" "응, 두 개는 남자친구 꺼." 친구 생일인 어제 남자친구가 미역국과 잡채를 만들어줬다는 얘기를 들었고 친구의 영어이름 NINA라 적혀진 음악CD가 침대맡에 놓여있었다. 한 달 전부터 사귀게 됐다는 친구의 기타선생님.

친구와 내가 새벽 3시까지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잠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우리 새언니가 나랑 동갑인데,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애 낳고, 기상시각은 매일 아침 6시... 그런 삶을 보면 나는 아직 철 없고, 드라마나 인디음악 그런 어린 낭만에 취하고 뭔가 안 맞게 살아가고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나의 말. "이 나이엔 결혼하고 아이키우며 느끼는 사랑과 행복이 참이고 내가 연애나 무언가를 꿈꾸며 느끼는 감정들은 겉멋이 좀 들어간 느낌"

"하지만 더이상 비교 않기로 했어. 괜찮은 거라고." 정도로 내 얘기는 끝났지만 내 말을 듣던 친구 감정은 뭐였을까 뒤늦게 궁금해졌다. 여섯 살 연하의 작곡하고 공연하는 젊고 가난한 남자를 사귀며 젊은 느낌에 더 물든 친구. 내 얘기가 자신을 쿡쿡 찌르는 느낌이라 불편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삶에 꽤 자부심있고 흔들림 없기에 아무렇지 않았을까.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친구와 참 많은 얘기를 했다. 우리 대화는 이삼십대 여자들이 모이면 흔히 하는 것, 남자얘기나 친구들 별별 근황도 들어있었지만, 절대 드러내놓고 아무하고나 나눌 수 없는, 어린시절과 가족에 관한 비밀스럽고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생활이 달라지고 오래 멀어져있던 친구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많은 시간, 많은 이야기. 하지만 서로 눈물 한 방울 없이 그 얘기들을 소화하고 있다는 게 나는 걸렸다. 마치 정말은 소화를 못 시키고 건성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감정은 서로 활짝 열리지 않은 채 라디오가 틀어진 듯 자기 자신의 이야기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넘기는 것처럼. 아무리 귀한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가도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게 내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마치 우리의 특별했던 대화 내용도 그런 것처럼. 나는 많이 꺼림직했다. 자기 인생에서 어떤 순간에 화내야 되는지 포인트를 못 짚는다는 공통점의 두 사람, 감정의 어느 부분이 멈춰있고 고장나 있는 오래된 두 친구. '그래서 우리가 친구가 됐나봐...' 싶었던 옛친구를 만나 겉으로만 강렬하고 속으로는 무감각한 기계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봐 나는 좀 싫었거나 겁이 났다.

내가 나를 보는 시각 '감정이 굳어있어 크게 기쁘지도 크게 슬프지도 않고 화도 안 나는 이상한, 인간미 없는 사람'

그 틀을 고스란히 친구에게 투영하며,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듯 친구를 좋아하지 않거나 의심했던 몇몇의 순간들. 동시에 나의 그런 마음과 의심들이 죄스럽기도 했다. 마음이 무거워질 만큼. 다음날 느즈막히 잠에서 깨 친구가 차려준 올리브와 샐러드가 있는 서양식 아침식사를 먹고 -그것도 두세 그릇이나 먹고 - 나는 집을 나섰는데, 나를 배웅하던 친구의 뒷모습까지 보고 정말 헤어졌을 때

그 순간이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일박이일이 만족스럽거나 잘 왔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내 마음 속에 일어났던 여러 판단과 내가 친구를 판단했음을 알아차린 때 스스로에게 내렸던 벌, "잘못하고 있어 너" 자신을 향한 매서운 목소리. 돈이 더 있고 남자친구가 있어 행복해보이는 친구를 질투했기에 그 하루가 행복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향한 매질 때문에, 나는 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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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1466323565 2016.06.19 17:06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잘보고가요~